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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 안내

의령큰줄땡기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7-05-30 07:32
조회
876
의령의 큰줄땡기기(보통『큰줄다리기』라 하지만 이 고장의 토박이말로 『줄땡기기』 『줄쌈』 (줄싸움의 준말)이라기 때문에 정감이 넘치기도 하거니와 친근감이 있어서 그대로 쓰는 것이다)에 대하여 문헌기록이나 믿을만한 구전담은 없다.
다만, 여든을 넘으신 상노인분들의 설명에 따르면 "웃대부터 행해져 왔던 연례행사로서 참말로 온 고을이 떠들썩했다"는 정도의 증언이 있을 뿐이다. 동국여지승람(1481년)이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상원(上元:정월대보름)과 가배절(嘉俳:추석)에 행해진 민간풍속중의 한가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의령 큰줄땡기기 이미지의령 큰줄땡기기 이미지 그 해의 풍년농사를 기원하고 특히 지난해의 나락(벼)농사를 잘 지었음을 자랑하는 한편 새해의 시절의 풍흉을 점치는 뜻에서 각 지방에서 널리 행해져 왔다는 것이다.
한자어로는 인삭(引索), 대삭(大索), 견구(牽鉤), 조리지희(照里之戱), 혈하(血河), 발하(拔河), 삭전(索戰)등 여러 가지 명칭을 쓰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칡덩쿨을 만들기 때문에 갈전(葛戰)이라 불렀다.
특히, 영호남과 제주도에서는 크게 성행했다고 하지만 일제총독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함경북도를 제외한 12개도 110여개 지방에서 행해진 전통 풍속으로 기록돼 있다. 중국 유래설과 함께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어쨌든 오랜 역사를 가진 고유민속 놀이임은 틀림없는 것이다.
그리고 놀이의 성격에 대한 민속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농경사회의 생산 신인 지모신(地母神)의 숭배와 용사(龍蛇) 신앙에서 기원했으며 남녀 성희(性戱)를 모방한 주술적 상징성과 함께 강인한 체력과 지역공동체의 단합을 과시하기 위한 편싸움이나 힘 겨루기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의령 큰줄땡기기 이미지

옛날부터 하(下)영남의 큰 민속행사로 『소싸움』과 의령의 『큰줄땡기기』가 꼽혔다고 한다. 특히, 우리 고장은 함안에 속해 있었고 신번현과는 별도의 행정구역이 된 적도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본다면 의령과 신번이 통합되고 독자적인 현감(縣監)이 설치된 뒤 대한제국시절 초기인 1800년경부터 고을행사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원래 줄땡기기(줄쌈)는 촌(村), 동(洞), 리(里), 면(面)등 소지역 단위로 행해졌던 고유민속놀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구조의 변혁을 겪으면서 현(縣 : 지금의 시군)단위의 큰 행사가 되었으며 시기와 형식 등도 지역실정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 온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지방에서는 추석이나 단오, 이월초하룻날 열리기도 했던 모양인데 우리고장에서는 옛 풍습대로 정월대보름날 낮 행사로 열렸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이나 전통문화의 말살정책으로 긴 세월동안 행할 수 없었으며 민속놀이 또한 위축되면서 명맥을 잇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1975년부터는 매년 4월22일 의병제전 때 부대행사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으며 어림잡아서도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전통문화이자 자랑스런 향토민속놀이다.
장소로는 원래 육일정(六一亭)앞 남산천의 둔치나 냇바닥에서 행해졌던 것이 그 뒤 남산 밑 운동장으로 옮겼고 근래 와서는 공설운동장에서 개최하고 있다. 옛날에는 대부분 강변 모랫벌, 보리밭, 개울 옆 둑길이나 양편지역 중간지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자니 장소에 맞게 줄의 길이나 크기가 달라져야 했으며 원형대로의 재현은 점점 더 어려운 여건이 된 셈이다.